오키나와 여행 코스를 검색해 보니 츄라우미 혹은 추라우미 수족관이 필수 코스인 듯했다. 가장 바로 든 생각은 이랬다.
'일본에서까지 수족관에 가야 할까?'
고품격 바다 컨셉 키즈카페?
나는 제주도에 살고 있다. 내가 사는 이곳에는 꽤 큰 규모의 수족관인 아쿠아플라넷 제주점이 있다. 물고기는 나와 너무 다르게 생긴 탓에 기이하고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터라 관상어라는 개념 자체가 나에겐 어불성설이다. 그런 나도 아이가 생기니 어쩔 수 없이 가게 되었다. 일단 실내라서 춥거나 덥거나 바람불거나 비가 오면 아이랑 놀기에 적당하다. 안에 들어가 보면 작은 놀이터 같은 공간들이나 다양한 볼거리, 특히 압도적인 스케일의 메인 수조와 그 안에서 펼쳐지는 물질 퍼포먼스 등 덕분에 돈 안 아깝게 놀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이 든다. 물개쇼를 곁들인 다이빙쇼까지 야무지게 잘 챙겨 보며 몇 번이나 방문했었다. 그렇기에 일본에까지 가서 수족관에 가는 게 나로서는 좀 답답하게 느껴졌다. 수족관은 나에게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돈 쓴 만큼 시간 때우게 해주는 고품질 키즈카페 같은 곳이었으니까.
물론 물고기나 해양 생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아이가 꼭 있지 않더라도 수족관에 가는 걸 즐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제주도의 아쿠아플라넷만 봐도 아이들 동반한 가족 단위 관광객이 정말 많다. 그래서 해외에서까지 수족관에 가고싶지 않았다. 일본 스러운 문화와 풍경을 눈에 담고 싶었지 가둬진 물고기들 사이로 인파에 몰려 걷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https://maps.app.goo.gl/WqJ1qsi2j6pf8vXt8
추라우미 수족관 · 424 Ishikawa, Motobu, Kunigami District, Okinawa 905-0206 일본
★★★★★ · 수족관
www.google.com
그럼에도 츄라우미 수족관에 가기로 한 이유
아무리 그래도 딸의 눈높이에서 재미있을만한 무언가를 포함시킬 필요가 있었다. 내가 가고 싶던 도자기 마을이나 남편이 원하던 쇼핑몰 등은 아무렴 아이의 눈에서 오락 거리는 되지 않을 터였다. 아이 입장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도착한 곳인데 어른들의 이기적인 취향으로 인해 지겨운 여행이라는 인상을 주는 건 미안한 일이다. 우리 애가 좋아하겠지 뭐~ 라는 생각으로 츄라우미 수족관을 여정에 포함했다.
솔직히 말하면 오키나와 3박 4일 일정에 그다지 꼭 하고 싶은 것이 없기도 했다. 사실 나는 오키나와에 대한 큰 정보 없이 비행기부터 끊고 봤다. 가족의 남은 마일리지를 일찍 써먹을 요량으로 찾다가 아이와 함께할 만한 해외여행지로 만만해 보였을 뿐이다. 그러니 오키나와의 뼛속을 들여다보고 내 취향에 따라 일정을 짜기보다는 남들 다 가는 데에 가면 뭐 중박은 치겠지, 하는 심정으로 그냥 갔다. 그리고 이건 나의 게으른 조사 탓도 있겠지만 내 시야에서는 오키나와의 큼직한 관광 스팟이 그리 다양하지는 않다. 전부 좀 좀 따리...
안 갔으면 어쩔 뻔
막상 가니까 너무 좋았다. 일단 츄라우미의 가장 큰 특징을 언급할 필요가 있는데, 여기는 실내 수족관 못지않게 넓고 다양한 실외 볼거리가 있다. 바다거북, 돌고래, 마나티 등은 모두 바깥 시설에 있다. 풍경도 탁 트인 바다를 배경으로 넓은 들판과 함께 가슴이 뻥 뚫릴듯한 해방감을 준다. 여기까지 대부분 차를 이용해서 적게는 몇 십분, 길게는 한 시간 반 정도 차를 타고 오게 될 것이다. 차에서 내려 언덕을 따라 쭉쭉 내려가다 딱 마주하는 그 넓고 푸른 바닷가 풍경은 맑은 날 보면 선물과도 같다. 수족관보다 더 만족스러웠던 것이 바로 수족관 외부의 탁 트인 풍경과 조경이었다.
같은 수족관이라도 같지가 않다. 제주도의 아쿠아플라넷도 다양한 바닷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다채롭게 볼 수 있는데, 츄라우미에 가니 뭔가 다르게 느껴졌다. 주변 해양 생태계가 달라서일지도 모르겠는데, 조금 더 작고 귀엽고 화려한 물고기들이 많이 있었다. 아쿠아플라넷은 전시 수조 자체가 화려하고 각각의 수조에 잘 분류된 물고기들을 관찰할 수 있으며 동선이 복잡하여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에 반해 츄라우미의 경우는 수족관은 모두 그저 평범한 사각 수조로 보이는데 그 안에서 펼쳐지는 바닷속 풍경이 수채화 같다고 느껴질 만큼 색과 종류가 이색적이고 다채롭다. 메인 수조는 쿠로시오 수조이고 프랜차이즈 스타는 고래상어이다. 우리 딸도 고래상어 인형 하나 업어 왔다. 그래서인지 오키나와 어디를 가도 고래상어 티셔츠를 팔고 있다.
압권은 역시나 오키짱
블로그에도 썼지만 오키나와 첫날 렌터카 휠을 해 먹었다.
(좌충우돌 사고 후기는 아래에...)
2025.01.18 - [일본 여행/오키나와 여행] - 오키나와에서 렌터카 휠 긁고 보험 처리 한 썰
그 사실을 어이없게도 다음날, 츄라우미에 출발하기 직전에 알게 되었다. 어차피 신고가 늦은 참에 여행 전체를 다 망칠 순 없어서 렌터카에 연락을 한 뒤에 착잡한 마음으로 츄라우미로 향했다. 당연히 남편과 냉랭한 기운을 조성하며 꾸역꾸역 웃고 있었는데, 그런 나에게 진짜 웃음을 준 건 바로 오키짱이었다. 오키나와 츄라우미 수족관의 돌고래를 오키짱이라고 한다. 우리가 간 날은 아주 쾌청한 하늘이 빛이 났고 그 아래에서 날개 같은 지느러미로 공기를 가르며 높이높이 점프하는 돌고래들은 그들도 나도 모두 행복하다는 마법의 주문을 걸어주고 있었다.
돌고래 쇼를 하는 동물들의 행복과 동물권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그 아름답고 찬란한 점프와 질주는 인간은 절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최면 혹은 묘기 같았다. 츄라우미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보니 역시 그들 나름의 동물 복지에 대한 기준을 두고 충분하고 확실한 보장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바닷가 바람이 심하게 부는 탓에 아이의 감기가 걱정되어 바다거북은 패스하고 마나티를 보러 갔다. 그 사이 아이는 잠들어버렸다. 옥색 혹은 에메랄드 같은 말이 무색한 바다빛을 뒤로하고 차로 가는 동안 아이가 이 환상 같은 바다 풍경을 꿈에서도 만끽하길, 혹여나 눈치챘을 어른들의 근심과 속 좁은 마음을 잊어버리길, 그리고 나 역시 오늘의 시원하고 따뜻하고 빛나는 풍경을 오래오래 기억하길 바랐다.
+ 돌고래 쇼 시간
10:30
11:30
13:00
15:00
17:00
+ 외부 볼거리(돌고래쑈, 바다거북, 마나티 등)는 티켓 확인을 요구하지 않는다.
+ 여기 먹거리는 죄다 맛없다. 되도록 끼니는 다른 곳에서 해결하고 오길. 출출하지도 마세요.
+ 입장권은 가는 길에 쿄다 휴게소에서 사야 할인을 제대로 받는다. 성인기준 1,850엔으로 330엔 할인받는 셈!
(만 6세 미만의 미취학아동은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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